'감상'에 해당되는 글 13건
- 동경 | 2010/01/02
- The boat that rocked | 2009/12/06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ESSAYS IN LOVE | 2009/01/05
- 아름다운 날들 | 2008/10/24
- 사랑하기 때문에 Parce que je t'aime | 2008/05/21
- 하악하악 | 2008/05/05
-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 2008/04/21
-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2) | 2007/07/25
- 세상의 모든 지식 | 2007/07/20
- 파피용 Le Papillon Des Etoiles | 2007/07/14
동경 :: 2010/01/02 11:01
동경-
그곳은 내가 살던 서울보다 좀 더 따뜻했고, 넓었고, 낯설었습니다.
떠나기 전 딱 알맞았던 패딩은 비행기에 타고 내리자 무지 더운 옷이 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중요한 것은 마음이고, 단체복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꿋꿋하게 입습니다. 땀띠가 무슨 대순가요. 등에 글로 박힌 서울대 검도부는 동경대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부터 우리가 대표합니다. 50여년의 역사, 그만큼의 시간, 그리고 그만큼의 사람. 물론 이것들을 다 보여줄 순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검도부에 들어와 2달여가 지났을 때 느꼈던 소속감, 그 이상의 것이 느껴집니다. 그저 감상에 빠져있던 것은 아니지만 역시나 그 순간에 부딪히고 나서야 지난 시간에 좀 더 치열하지 못한 것을 떠올리게 되는건 부끄럽네요.
그렇게 동경대 친구들이 짜놓은 스케쥴에 따라 움직이며 검을 부딪히고, 잔을 부딪히던 3일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빨리 지나갔고, 일본의 동경이란 곳보다는 동경 안의 동경대학교 검도부를 마주한 시간이었습니다. 몇몇 순간과 사건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웃음은 따뜻했고, 우리가 맞이할 차례가 되었을 때 그들이 우리에게도 따뜻함을 느끼길 바라게 만들었습니다. 역시 장소도 장소지만 사람과 마음이 중요한건 변하지 않는 진리인 듯 싶습니다.
공식적인 동경대 교류전이 끝나고 우리를 움직이게 하던 '계획'이 사라진 시점부터, 저는 일본의 동경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동경대학교 검도부 친구들과 함께하는 거리가 아닌, 이곳에 연고라고는 없는 검도부 선후배들과 함께 서 있는 거리는 새로웠습니다. 아사쿠사, 에비수, 하라주쿠, 오다이바 등. 인사동, 신촌, 신림, 대학로 같은 지명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곳들을 나는 나의 눈으로 귀로 보고 듣고 느꼈습니다. 우리가 묵었던 아사쿠사 뷰 호텔이나 에비수의 한 빌딩 38층에서 본 동경은 제가 알던 서울이란 도시보다 넓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산이 너무 멀리있기 때문이었을까요. 산이 나타나야할 것 같은 경계즈음에는 여전히 건물들이 서있었고 그보다 더 먼 곳에 시선을 던져야 희미한 산이 나타났습니다.
그 넓고 새로운 곳. 하지만 위에서도 썼든 중요한건 함께한 사람들이겠지요. 하지만 낯섬이란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 가장 익숙하다 생각했던 이들 사이에서 가장 낯선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제 자신이 가진 한계에 대한 반성, 그리고 그 이상의 노력을 해보았지만 모자란 부분을 채우기엔 제가 많이 모자랐습니다. 그래도 그들과 함께한 시간을 어찌 잊을까요.
그 낯선 곳에서 어떤 순간은 분명 한국에서 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지켜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지만, 사람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곳에서의 경험은 새롭고 소중합니다. 함께해준 모든 이들께 감사하며- 오랜 시간 후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함께 돌아보길 바랍니다.
The boat that rocked :: 2009/12/06 18:14
이게 얼마만의 감상인지- 사실 그동안 영화를 아예 안본건 아닌데. 귀찮아서 리뷰를 안했다. 그러다보니 결국 남는게 없네. 인간의 하찮은 휘발성 기억. 특히 난 남는게 없는 놈인데 어쩌자고 아무 기록도 안했을까. 어쨌든, 이 영화를 보고는 떠올렸다. 여기, 이곳에 내가 내 감정을 기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1960년대 절정을 이루고 사라졌던 영국의 해적 방송과 Rock n Roll(락이라고만 쓰기 짧다고 느낀다. 이 영화가 말한 음악은)을 소재로 , 결국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 'Radio Rock'은 꿈의 바다 한가운데를 현실과 제약이라는 파도에 맞서 항해하는 해적선이다. 그들이 노래하는 함상의 외침은 전파를 타고 꿈의 바다에 떠있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것을 전달한다. 해적선이 위태롭지 않을 수는 없다. 그들은 결국 조난을 당하고 그들이 보내는 조난 신호를 정부는 무시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카운트는 이야기한다. 이것으로 우리를 이겼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영혼을 울리는 노래는 만들어질 것이고, 다만 우리가 그것을 못트는 것이 아쉬울 뿐이라고.
요즘 종종 내게 말들 한다. 난 너무 이상적이라고, 또 순수하다고. 하지만 그건 돌려서 말하는 이야기인 것을 알고 있다. 철이 덜 들었다고, 나잇값 못한다는 말을 면전에 대놓고 하기엔 어려워서 하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것은 또 무엇일까? 사람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어하고, 실제로 그걸 쫓아 살든 그렇지 못하든 목표에 대한 지향은 버리지 못하는 속성 중 하나다. 당장 그것이 먹고 싶은 음식이 되었든, 먼훗날 세계 정복을 하겠다는 포부든. 어떤 이들이 쫓고 앉아 있는 것이 강남이나 여의도 등지에 직장을 얻고 점심 시간에 폼 잡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외양이 아니라면, 딱히 원하는 것은 없는데 그냥 남들한테 뒤쳐지기는 싫어서 급급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당신이 품고 있는 목표도 일종의 이상이다. 최근 현실적 노력의 화신이자 아이콘은 MB 대통령이 아닌가 한다. 그 사람이 추진하는 여러 사업들. 그게 어디가 어떻게 현실적인건가. 그저 이상이다. 이것저것 잘 모르겠지만 그냥 모나지 않게, 하지만 좀 편하게 살고 싶다는 것도 결국 이상이다.
난 차라리 내가 이미 경험했던 것을 내가 다시 이루려는 것뿐. 경험했던 현실을 이루려는 것이 이상이 된 이 세상이 그저 우스울 뿐이다. 야망도 뭣도 없는 멋대가리 없는 인생이 될지도 모르지만, 난 내가 원하는 삶을 살련다.
그래서 카운트가 자기 삶에서는 지금이 이정도가 최고라고, 젊은 칼에게 더 나은 삶을 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은 도무지 갑갑했고 맥락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 삶에 대단한 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항상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그 길을 가는 중에도 고민할 것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내 길을 찾아가는게 인생이 아닐까. 그런 말을 한 카운트는 끝까지 라디오 부스를 지키며 '꿈'을 전달하려하고 침몰해버린 'Radio Rock'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결국 북해 속으로 가라 앉아버린 해적 라디오 방송, 'Radio Rock'이라는 배, LP판- 이런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배 따위 침몰할 수 있다. 해적 라디오 방송도 금지될 수 있고. LP판은 플레이 조차 안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런 것들이 아니다. 인간이 꿈을 꾸고, 그 꿈을 전할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이 꾸는 꿈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그렇게 믿고 싶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ESSAYS IN LOVE :: 2009/01/05 21:38
'사랑'은 아마 인류가 가지고 있는 꽤 오래되고 깊은, 그리고 여전히 명확한 해답이 나오지 않은,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이 겪고 탐구하는 최고의 주제 중 하나가 아닐까한다. 이 책은 분명 그 사랑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정의를 내려놓고 설명한 개론서도 아니고, 어찌 사랑해야하는가에 대한 지침서도 아니다. 그렇다고 이성을 유혹하는 방법에 대한 실용서(?)는 더더욱 아니다. 책을 덮으면서 난 왠지 뜨겁게 사랑하고, 이제는 좀 감정의 정리가 된, 기본적으로 생각하기 좋아하고 바탕에 상식이 많은 형님과 긴 술자리를 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뭐- 다 읽고 나서의 감상이지만 한국판 제목을 너무 그럴 듯 하게 지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원판 제목인 ESSAYS IN LOVE가 훨씬 이 책에 걸맞는 느낌이다.
어쨌든- 이 책은 '내'가 '클로이' 사랑한, 아니 '벨트슈메르츠'가 '티지'를 '마시멜로'한 이야기다. 그는 사랑을 어찌 시작하고, 도중에 어떤 고민을 했으며, 또 어찌 이별을 맞이했는지- 그의 경험담이 그 순서에 따라 적혀있다. 그는 마치 지금하고 있는 사랑처럼 생생하고, 지금 막 떠올린 생각을 적는 것처럼 사랑의 그 순간순간에 오는 많은 고민을 신기할만큼 공감되게 써놓았다.
최초의 만남에서 상대방의 모든 행동에서 뭔가를 읽어내려는 시도부터, 사랑의 과정에도 그 본질에 대해 고민하며, 이별을 겪은 후에 하는 행동과 떠올리는 생각들마저- 그가 정말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섞여있는 위트들, 가령 클로이와 자신이 만날 확률을 수학적으로 계산한다던가 테러리스트에의 비유 등도 매우 맛깔스러운 글쓰기의 양념이었다.
무엇을 어찌해야한다던가 하는 지침서를 개인적으로 별로 맘에 안들어하는 편이라, 차라리 자신은 어찌 사랑했다고 고백하는 듯한 이 글은 참 재밌게 들었다.(난 이렇게 느낀다.) 이런 많고 많은 사고와 무수한 내적 감정의 충돌, 갈등, 고민을 풀어낸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그는 '난 사랑했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느낌이었다. 세상의 그 많은 사랑들. 어느 것 하나 특별하지 않을 수 없는. 그대들의 인생이 하나하나 특별한 것처럼 특별한 사랑들 중, 하나의 또 특별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나 스스로에게도 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했다.
사랑은 무엇인가? 그것을 겪은, 겪고 싶은, 겪고 있는 그대라고 알겠는가? 하지만- 겪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전혀 감도 못잡을 것이 '사랑'아닌가 한다. 이 '사랑'에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실체인지 망막에 맺힌 착시인지 의심할 수 있는 철학을 들이대는 것은 얼마나 부질없는지. 내 망막의 상이 착시라면 내 망막 너머로 느껴지는 이 열기와 손으로 느낄 수 있는 일렁임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 느끼는 이 실체를 내 사고와 심장이 인정할 수 밖에 없다면, 내 행동마저 결정하기 시작한다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사랑'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지금도 후에도 부정할 수 없는 그 감정.
"미망은 그 자체가 해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할 때만 해가된다."
난 달걀 프라이, 그대는 날 받치는 토스트 한 조각. 내가 나로 유지될 수 있게- 당신이 그로 인해 가치 있다면 함께해줘요. 자신을 달걀 프라이로 인식하기 시작한 남자가 노른자위가 터질까, 자신이 찢어질까 불안해 아무것도 못하자 의사는 그 의식 속에 항상 스스로를 받칠 토스트를 들고 다니라고 처방해주자 정상적 생활이 가능했다고 한다. 우스우면서도 전혀 우습지 않은 이야기-
[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단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누군가에 단 한 번이라도 뜨거웠던 당신이라면. 그 아픔을 겪은 어느 누가 당신이 헛된 경험을 했다고 이야기하겠는가. 그 많은 사고와 고민과 감정의 굴곡에 대한 경험이 이제와 가치있다 느끼는게 그저 위안이라고 할지라도. 그에 대해 누가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의 낭만주의적 감성은 여전히 당신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가슴 저리게 느낀다.
p.s. 후에 알았지만 이 책은 저자가 25살 무렵 쓴 처녀작이라고 한다. 이제 갑이네. 형님 취소하자.
아름다운 날들 :: 2008/10/24 13:06
2008년 가을- 거참 이상하게도, 가을 탄 적은 단 한번이 없었는데. 이번 가을은 좀 이상하다. 파도에 맡겨진 조각배처럼 넘실넘실, 아니 그저 나무조각이라고 해야하나. 이상한 기분이다. 이쪽 절정과 다시 저쪽 절정을 오간다기보다, 그냥 가운데 언저리를 왔다갔다- 아마 확신의 문제려니 싶다. 어쨌든, 이런 기분에 제대로할 수 있는건 많지 않으니까. 그리하야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아니던가. 해서 일단 추천받았던 책 몇권을 읽었는데 그 중 첫번째로 감상을 쓰고 싶은건 이 성석제의 '아름다운 날들'이다.
제목을 딱 보고는 왠지 어린 시절의 이야기지 싶었는데 펴자마자 옳커니. 신이 내려셨다. 하지만 읽어나가면서는 전혀 예상과는 달랐다. 우선 이 작가의 문체랄까. 난 이 제목의 첫느낌이 왠지 우울할거 같아서 이야기 전개도 그러려니 싶었는데, 아니 뭐 사실 이 소설하나 읽어봤으니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상황에 대해 반어적인 묘사로 웃음을 주는 부분이 한두군데가 아니었다. 흡사 어린 아이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재미있는 이야기꾼 아저씨정도라고나 할까. 물론 그런 문체의 단점은 자칫 웃음코드를 놓치면 글에 대한 흥미마저 놓치게될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만, 작가는 그런 걱정을 접어도 될 정도로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다.
'딩동댕, 드르르릉 기타 소리가 났습니다. 저녁의 미지근한 공기 속으로 퍼져나가던 그 소리는 그 후 원두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아름다운 흉터를 남겼습니다."
"그때 원두는 일생에 보탬이 되는 한 가지 진실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좋은 노래는 가사를 꼭 알아들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요."
"원두는 신이 나서 연을 들고 바람이 몸을 띄울 듯 세차게 부는 들판으로 쫓아 나갔습니다. 연은 바람 냄새를 맡자마자 실을 풀지도 않앗는데 떠오르려고 안달이었어요."
흠- 줄거리에 대한 감상을 쭉 적을까 했는데. 그러진 말아야겠다. 다만 작가의 마지막 말이 참 가슴에 남는 것 같다.
- 위대한 노래는 이승에도 천국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 천국은 대체로 어린 시절에 속해 있고 추억이라는 이름의 왕이 다스린다.
사랑하기 때문에 Parce que je t'aime :: 2008/05/21 11:15
전부터 신문광고를 통해 '기욤 뮈소'라는 작가의 작품들을 접했었다. 너무 화려한 수식어들로 치장되어 있어 당시에는 크게 끌리질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또 돈이 좀 생기자 '어디 얼마나 재미있나 보자.'라는 식의 불순한 사고를 바탕으로 지르게 되었다. 와우! 근데 이게 왠걸. 이 작가의 글은 내게 꽤나 매력적이었다. 약 300페이지가 좀 더 되는 적다고는 할 수 없는 양의 글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는걸 허락하지 않았다. 만만히 보고 책을 쳘친 순간부터 난 짧은 잽을 무수히, 아주 정신이 쏙 빠지게 맞다가 후반부에 아주 강력한 어퍼컷 한방에 쑥-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황홀한 패배, 즐거운 경기였다.
지금부터는 약간 스포일러성 글이 될 가능성이 높겠다. 어쨌든 글에 등장하는 인문들은 공통적으로 내면에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마크의 경우는 사랑하던 딸을 잃었고, 에비는 억울하게 어머니를 잃었으며, 커너와 앨리슨은 각자 드러낼 수 없는 과거에 괴로워한다. 그 상처로 인해 각 인물들은 자신의 삶을 지탱하지 못하고 스스로 붕괴되어 간다. 물론 그 모습들은 다르게 나타나지만.
그러한 상처들이 그들을 파괴해가고 있던 과정에서 기욤 뮈소가 던지는 해결책은 우선 '직면'이었다.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 탓에 그것을 잃은 순간 자멸해 버린 마크는 그 딸의 죽음에 마음을 허락하고 직면함으로서, 에비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게만든 의사에 대한 증오심과 마지막 순간 어머니를 믿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을 받아들이고 직면함으로서, 앨리슨은 결국 자신이 죽인 아이가 마크의 딸이었단 사실을 고백함으로써, 커너는 자신의 공포심이 시작된 그 컨테이너로 방문함으로서 상처를 똑바로 쳐다보게 된다. 그들은 상처의 아픔 때문에 지금껏 그 본질을 외면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상처를 똑바로 직시한 그들을 치유해준건 '사랑'이었다. 마크는 딸 라일라는 잃었지만 아내 니콜은 남아있었다. 에비에게는 커너가 나타났고, 앨리슨은 새로운 사랑을 만났으며, 커너는 에비를 믿었다. 상처가 치유되는 완결은 사랑의 몫이었다.
4명의 주된 인물들은 서로 얽히고 설켜 각각에 상처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치유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일견 복잡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작가는 빠른 호흡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이야기를 순조롭게 풀어나간다. 읽는 내내 즐거웠고 책을 덮는 순간은 기뻤다. 책 맨 뒤편에 쓰여있는 그의 말이 인상깊다.
"나는 사랑 이야기가 없는 작품을 상상할 수 없다. 사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사랑 혹은 사랑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것 아니겠는가. 따라서 사랑이라는 독특한 감정을 기술하는 것은 나에겐 언제나 일종의 도전이다."
앞으로도 그의 도전을 즐겁게 지켜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악하악 :: 2008/05/05 00:10

하지만 덕분에 부담감은 덜어놓고 기대감을 적당히 진 상태에서 책을 펼칠 수 있었다. 책은 '정태련'의 삽화와 '이외수'의 짤막한 글들이 함께 펼쳐지고 있었다. 마치 인터넷 댓글 같기도 하고 아포리즘 같기도 한 글들은 작가의 나이를 전혀 짐작할 수 없을만큼 유머와 위트가 넘쳤고 또 날카로웠다. 뭐, 종종 자기 변명같은 글들도 몇 개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평소 갑갑하다고 느꼈던 부분들에 대해 화끈한 일침을 날리기도 하고, 인생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기도 하는 등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이런 기인, 아니 작가는 사상의 방향을 떠나 호감이 간다. 현실의 감을 놓지 않으면서 노력해가는 모습. 확고한 '자신'이 서 있는 누군가에게는 기인일지 몰라도 그 자신의 모습에 떳떳한 자세 말이다. 아, 물론 어디까지나 '기인'이지 싸이코패스나 오덕후 수준까지 호감이 간다는 것은 아니고.
어쨌든 속 시원히 유쾌한 글이었다. 하악하악.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 2008/04/21 23:12

요즈음 세상을 바라다보면 과연 '숭고한 가치'라 여기는 것들이 살아 있는가 의심이 들 때가 많다. 꿈이고 이상이라는 것은 어릴적 읽었던 동화책 속에나 존재하는 피터팬처럼 현존하지 않거나, 너무나도 아련한 옛날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의심 말이다. 혹은 그런 가치를 아직 소중히 여기는 태도는 '아직 세상을 모른다.'는 냉소나 충고를 받기 십상이다. 아니면 어디 두고 보자라는 듯한 도전에 직면하거나.
사실 내가 꿈이고 이상을 이야기할 처지는 되지 못한다. 난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니 해본적 조차 없는 애송이 그 자체라는 사실을 이제 인지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무엇이 옳고 그름의 판단이나 내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도는 어렴풋이 가리고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사고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고의 힘마저 세상이라는 폭풍 속에 사그라져가고 있던 요즘 내 의지에 활활 타오를 수 있는 장작을 던져주는 책이 나타났다. 바로 소설가 공지영의 산문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이다.
책은 작가가 그의 딸 위녕에게 쓰는 편지글 형식으로 되어있다. 아마 딸이 고3 때가 아니었을까 짐작되어지는 편지들 속에는 작가의 딸에 대한 사랑이 담뿍 담긴 내용들이 종종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글과 시를 인용해가며 쓰여져 있었다. 자신의 딸에게 해주는 어머니로서, 또 인생의 선배로서의 애정어린 이야기들은 분명 그 시간의 위녕에게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종이에 인쇄되어 내 손에 들어온 그 글들은 그와 비슷한 때를 보내고 있는 나에게도 큰 지지가 되어 주었다.
작가는 내 어리석고 미흡한 꿈에는 힘을 실어주고 토닥여주었고, 일말의 나태함과 게으름은 그 바닥부터 반성하게 해주었다. 물론 책의 모든 내용을 공감하고 끄덕인 것만은 아니었으나 정말이지 이 책이 지금의 내게 온 것이 다행이라 여길정도의 감명과 힘을 얻었다. 인용하고 싶은 구절이 넘쳐날 정도지만 하지는 않으련다.
다만 이제 현실을 살아가는 내 삶으로 표현해 나가리라. 그럼 언젠가 나의 '생이 생 전체로 모든 물음에 대답하고 있는 날이' 올거란 그녀의 말을 믿는다.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 2007/07/25 23:30

기록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블로그를 만들어서 뭔가 적어나가고 싶어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사람의 기억은 한계가 있고 구전은 축소나 과장되기 마련이다. 물론 기록이란 것 자체도 매우 주관적이고 사실이라고 하기 어려울 수 있으나 기억이나 구전에 비해 훨씬 보존과 전달이 용이하다. 그래서 후에 보면 그당시를 회상하기도 좋고, 반성하기도 참 좋다.
역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선대에 기록되고 전해지는 모든 것들은 후대에 받아서 기억하고 배워나가고 반성하며 더 나은 삶을 위해 쓰여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역사를 배우는 것을 좋아했고 여전히 관심이 많다. 그런 내가 이번에 읽게된 책이 바로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과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이다. 역사의 전반을 다루는 보통의 역사책과는 달리 살인사건과 연애사건이라는 테마에 한정해서 조선시대를 조망하고 있는 이 책은 보통의 역사책보다 훨씬 그 사회의 단면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사채 때문에 살인이 일어났고, 복수에 불타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리고 금지된 사랑에 고통받기도 했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도 있었다. 중요한건 그 개별적인 사건들이 당시의 시대상을 참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노비의 자식을 명확한 이유도 없이 그 부모 앞에서 때려죽인 주인을 참지못하고 살해한 노비는 결국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능지처참을 당한다. 노비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 상민은 결국 두 명 모두 죽음에 이르렀다. 이처럼 당시의 사회 구조와 사건이 잘 맞물려 독자에게 흥미를 유발시킨다. 그리고 그 당시의 사회가 지금과 별반 다를 것 없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완전히 다른 점을 발견하기도 하며, 그 당시와 비교해 현재를 생각할 기회를 준다.
두 권 모두 전반의 사회상보다 특정한 주제의 사건에 초점을 맞춰 서술해 나가는 생각은 정말 좋은 책이었다. 하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책머리에서 밝혔던 사실에 기초해 소설의 형식을 빌겠다고 말을 했다면, 좀 더 흥미진진하고 자유로운 문체로 써도 되었을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해 흥미를 떨어뜨린 점이다. 개인적으로 두 권의 문체 모두 역사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서버린 것은 실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충분히 흥미롭고 재미있었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을 뿐이다.
개인이 모여 사회가 되고, 사회가 흘러간 흔적이 남는 것이 역사일 것이다. 항상 그 거대한 흐름만 파악하던 내게, 개인의 사건을 살펴보는 기회를 준 책이었다.
세상의 모든 지식 :: 2007/07/20 02:48

어릴 때 보면 어떤 친구들은 정말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처럼 이것저것 시시콜콜한 것까지 외우고 다녔다. 물론 주로 어린 시절 부모님의 지나친 교육열로 이런저런 책을 읽게 되고, 이해했든 못했든 이것저것 이야기하면 과도한 칭찬-주로 내 아들은 천재야.-을 받게되며 그 후 의욕에 불타올라 점점 더 탐독하게된 결과였겠지만.
결코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애석하게도 그때 그 똘똘이 스머프들은 지금 그 당시의 천재성을 보이지 못하는게 대부분인 것 같다. 역시 애들은 나가 놀면서 커야 한다는... 흠. 난 왜 감상문만 쓰려고 하면 헛소리가 길어지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아주 어린 시절 그런 식으로 쌓았던 상식들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지 않음이 안타깝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꺼내게 된 잡설이다.
나만해도 꽤 많은 양의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물론 나가노는 것을 더 좋아하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떤 기본적 교양이나 이해능력이 떨어지는 시기 잔뜩 양만 늘렸던 지식은 이제와서 생각해보자면, 솔직히 별 소용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더 애석하게 만드는건 이후의 상황이다. 이제 슬슬 머리도 커가고 세상을 보기 시작하는 시각을 키우는 청소년기는 솔직히 여유가 없다. 물론 핑계일 수도 있지만, 난 교과서 보고 학교, 학원 수업 따라가기도 바빴다. 그 당시 난 지식과 상식을 넓히기 위한 독서라는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 돌아보니 어느새 난 20대 초반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머리 속에 든 건 정말 그 어느때 보다도 빈곤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소용이 있든 없든 여하간에 중고등학교 땐 꽉꽉 채우기는 했으니까. 그러던 와중에 이번에 읽게 된 '세상의 모든 지식'은 그런 내 갈증을 일정 부분, 아니 솔직히 꽤 많이 채워주는 책이다. 책 제목 처럼 모든 지식이 들어있진 않다. 뭐, 그럴 수 있는 책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정말 다양한 분야에 걸쳐 600쪽이 훌쩍 넘는 분량으로 지식을 써내려가고 있다. 어린 시절 읽던 백과사전과는 달리 필자의 의견이 각 부분마다 녹아있어 읽는 맛을 더한다. 양도 꽤 되는 데다가 묵직한 손맛까지. 개인적으로 화장실에 비치해놓는다면 변비도 무섭지 않을 것 같은 실용적 기능까지 갖춘 서적인 듯 싶다.
계속 읽어나가면서 '그런 잡스런 지식들이 소용있겠어?'라는 생각은 정말 고등학교에서 끝내야 겠다고 느낀다. 수능에 안나오는 것이 소용없다고 생각하는건 그때로 족하니까 말이다.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날 볼 수 있다.
파피용 Le Papillon Des Etoiles :: 2007/07/14 16:33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 도서관에서 개미를 뽑아들었던 그때부터 이전의 단편 모음집 나무까지, 모든 책을 읽진 않았지만 왠만한 그의 책은 다 읽었던 나다.
그의 이야기들은 솔직히 허우맹랑할 정도로 거대한 상상력을 발휘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그 상상력을 비웃기는 커녕 빠져들 수 있는건 그에 따른 과학적 뒷받침이 탄탄하기 때문일 것이다. 과학적 탐구와 연구의 소재로부터 시작되는 상상력의 폭발은 그의 장기 중의 장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번 그의 신간, '파피용'에서도 그의 장기는 유감없이 발휘된다. '개미'와 '뇌' 등을 통해 지구 안으로, 사람에게 확장되던 그의 상상력은 이제 우주로 뻗어나간다. 천재지만 추진력과 결단이 부족하던 과학자 이브 크라메르의 '태양 범선'은 강력한 추진력과 동시에 거대한 경제적 부를 가진 조력자 가브리엘 맥 나마라를 만나고 꿈에서 현실의 단계로 넘어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태양 범선'이 추진되는 과정 속에서 이브에 의한 교통사고로 인생을 망쳐버렸다가 다시 그에 의해 범선의 키잡이를 하게되는 엘리자베트 말로리와, 프로젝트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범선 내의 사회를 구축하는 기본을 맡는 아드리앵 바이스가 참여하게 된다.
그들의 프로젝트는 이제, 그저 '태양 범선'을 띄우는 것이 아니라 나날이 인간에 의해 환경은 파괴되어 가고, 그 인간 스스로도 자신들의 폭력성과 야만성, 비이성적 행태들로 인해 파멸되어가고 있는 지구를 떠나려는 '마지막 희망'이 된다. 물론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프로젝트로 추진되어가다 밝혀지는 때부터 전지구적인 비판에 부딪히나, 결국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희망' 프로젝트의 '파피용'호는 이륙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지구가 아닌 또다른 별을 향해 날아갈 수 있게 된다.
과연 그들은 그들이 되풀이하지 않으려던 이전 지구의 과오를 범하지 않고 새로운 행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면서 책을 읽어나갔다. 최초의 탑승자 14만 4천명의 사람들은 그러한 기대를 쉽게 져버렸다. 인간이 스스로 내제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폭력성은 표출되고 그것을 막으려는 법과 권력이 다시 만들어지고 결국 전쟁 마저 벌어진다. 그리고 1천년이 넘는 항해 중에 단 6명의 사람이 생존하게 된다. 다시 그중 남녀 한쌍만이 새로운 행성에 도착하게 되고 다시금 '인류'의 생존이 시작되어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어찌보면 그들은 이브 크라메르의 최초 계획대로 '탈출' 자체에는 성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파멸되어가는 현인류의 작태에서 벗어나겠다던 계획은 아직 그 성공을 이야기할 수 없겠다. 이야기 속의 신 인류는 그야말로 다시 '태초'의 시간에서부터 시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면 이브 크라메르를 비롯한 '마지막 희망' 프로젝트를 구현한 그들이 우리 이전 인류가 아니었나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은 더 나은 인류의 미래, 스스로 내제된 제한 요소에 무릎 꿇지 않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펼쳐나가는 후손을 기대하며 탈출을 위한 '파피용'을 띄웠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에서 살아남아 탈출에 성공한 마지막 한쌍은 구 인류가 범한 과오를 재발해서는 안됨을 잘 알고 있다. 그의 마지막 대사, '영원히 탈출을 계속할 수는 없다.'에서 그것은 명확해 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제한 요소에 무릎꿇어서는 안된다.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것에 대한 희망과 꿈을 놓지 않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궁극적인 해결을 가져오는 것이다.
책을 읽는 시간동안 '파피용'을 함께 타고 1천년의 시간동안 우주 속을 날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항해를 마치고 난 그대로 나였지만, 그 항해는 내게 더 나아질 수 있는 '꿈'을 충전해 주었다.


